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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뢰벨의 교육

1. 교육목적과 내용
프뢰벨은 인간의 교육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밝히는 데 있어서 먼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고 있다. 교육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어떠한 교육목적으로,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교육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프뢰벨은 인간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어떤 독자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 그가 말하는 신-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으로서 신의 본직을 지닌 존재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은 신적인 것, 또는 신으로부터 나오고 신적인 것 혹은 신에 의해서만 제약된다. 신 안에서만이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 있다. 모든 것 속에 신적인 것과 신이 깃들고 작용하며 또 지배하고 있다.- 인식하는 존재, 이성을 갖는 존재로서의 특수한 사명, 특수한 직분은 인간의 본질은, 인간 속에 있는 전적인 것을, 따라서 신을 더욱이 인간의 사명과 직분 자체를 충분히 인식하고 명확하게 통찰하는 것, 다시 그것을 자신의 결정과 자유로서 자기의 생명 속에서 실현하고 활동시켜 구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먼저 자신의 신적인 본질, 신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할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프뢰벨은 말한다. 인간은 신적인 것을 인식하여야 하고, 신적인 것을 실현할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프뢰벨은 말한다. 왜 인간은 신적인 것을 인식하여야 하고, 신적인 것을 실현할 것을 사명으로 하는가, 프뢰벨은 이에 대하여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것의 존재 근원 또한 '신'이기 때문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 하에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견해에서는 일차적으로 내적인 것의 인식과 실현, 즉 신적인 것의 실현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타고난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방해되거나 간섭되어서는 안 된다. 내적인 것, 즉 타고난 본질에 기초를 두고 그것이 잘 실현되도록 도와주고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된다. 그리하여 프뢰벨은 교육은 수동적이고 보호적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이 내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외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일 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부정적이고 방해적,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두 번째로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견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추종적인 교육에서 규정적 교육으로의 전환, 나아가 이들 양자의 결합이다. 이 전환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인간의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 순수하게 규정적, 요구적, 명령적인 인간에 대한 교육의 방법은 본래 명확한 자기의식의 각성이 있고서 신과 인간이 합일적 생명의 개시와 더불어 아버지와 자식, 제자와 스승의 상호 이해와 공동의 생명이 개시된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진리가 전체의 본질과 개인의 본성에서 인도되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뢰벨이 명령적, 규정적 교육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서 어린이의 내적인 필요와 요구에 반하는, 이중적으로 부과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프뢰벨의 규정적 교육은 어떤 것을 그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를 밝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뢰벨은 추종적 교육과 규정적 교육만으로 인간의 교육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들 두 교육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의 것만 강조하게 될 때는 참된 교육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프뢰벨의 설명을 들어보자.

착한 교육, 올바른 교육, 참된 교훈에 있어서는 필연성이 자유를, 법칙이 자기 결정을, 외적 강제가 내심의 자유의지를, 외적 증오가 내심의 사랑을 환기해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법칙이 기반과 붕괴의 강제가 노예근성을, 필연성이 맹종심을 낳는다. 또 압박이 파괴와 타락을 낳고 무거운 짐이 파멸과 비천을 초래하게 된다. 더욱이 엄격함에 의하여 가혹과 반항과 불신을 낳는 곳에서는 모든 교육 즉, 교육, 교수, 교훈의 작용은 모두 파괴당하고 만다.

상황에 따라 추종적 교육을 혹을 규정적 교육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두가지 교육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은 추종적 교육과 규정적 교육 모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들이 제3의 것에서 통일을 이룰 것을 보여준다. 프뢰벨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혹은 요구와 복종 사이에서의 제3의 것으로,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모든 조건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비자의적으로 자기를 표명하는 최선의 것과 정의"가 지배하고 있으므로 이를 승인하고 인식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그 지배에 몸을 맡기라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프뢰벨의 추종적 교육, 규정적 교육 그리고 이들의 통일이라는 교육에 대한 견해는 놀이의 중요성과 의미를 밝히는데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프뢰벨은 인간 발달 단계 중에서 특히 이른 시기의 발달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 이른 시기의 발달과 관련하여 이들 견해가 주는 시사가 크기 때문이다.

프뢰벨은 구체적으로 인간 발달 단계를 유아, 유년, 소년, 청년, 노년으로 구분하고 각 단계는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침투를 해 가면서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유아기를 "주로 다만 살아가기 위한 것뿐인 생명의 단계 내지 생명 그 자체의 단계, 내적인 것을 바깥에 나타낸다는 것을 주로 하는 단계, 그리고 소년기를 주로 외적인 것을 내면화하는 단계, 즉 학습의 단계"라고 밝히고 있다. 이 발달단계의 특징에 따라서 추종적 혹은 규정적인 교육이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프뢰벨이 주장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에 따르는 추종적인 교육을 위주로 하는 교육, 이는 독자적인 능력, 신적인 본질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에 기초한 것이지만, 교육의 출발점을 인간의 내적인 필요와 요구에 두어야 한다는 접에서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2. 교육방법
첫째, 통일의 원리이다.
프뢰벨은 "정신계와 자연계 그리고 개인과 사회간에는 분할이 없는 하나의 대통 일체로서의 세계 또는 우주"를 생각하고 "우주에는 근본이 도는 힘, 즉 절대적인 것"이 있는바 그 절대적인 것이 신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프뢰벨은 자연과 정신을 분리 또는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양자는 그 근원에 있어서 하나로 합일한다고 하는 사상이었다. 세계의 전체를 하나의 조화, 통일된 전체로서의 유기체로 보고 그 중심 또는 근원으로서의 신이라고 한 그의 사상체계는 종교적, 철학적, 낭만주의적 세계관에 서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이 프뢰벨에 의하면 만물은 모순, 분열, 투쟁이 아니고 오히려 조화, 통일, 융합이라 보는 한 그의 교육목적은 자명하다. 그에 의하면 신적인 통일을 빼놓고서는 자연도 없고 인생도 없으며 이 자연계는 생명의 커다란 유기체이며, 개개의 자연현상은 내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 유기체에는 하나의 영원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생명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융합체로써 정신적인 것이 없는 물질은 죽은 것이며, 정신적인 것과 관계없는 물질은 혼돈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우주의 모든 형성 작용의 근저에는 하나의 통일, 즉 신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기 활동의 원리이다.
프뢰벨은 교육을 '창조적인 자기활동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신성'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타율적이고 간섭적인 교육은 거부되어야 한다. 자기 발달의 원리 즉, 자기 활동이란 자기 자신의 동기에 의해서 결정되고, 자기 자신의 흥미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 지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과제는 아동의 모든 흥미와 욕구에 따른 창조적 활동에 따라 교육되어야 한다.

셋째, 놀이(play) 및 작업의 원리이다.
놀이에는 운동적인 놀이와 작업적인 놀이가 있다. 운동적 놀이는 행진, 뛰기, 무용 등을 말한다. 작업적 놀이는 은물(Gifts of God : 아동이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를 구성하는 탁상놀이이다. 아동들은 이 은물을 통하여 감각기관을 훈련하고 우주의 이법을 깨닫고 신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프뢰벨은 '은물'을 통하여 아동의 신성을 계발하려 했기 때문에 후세의 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상징주의"라고 명명하였다.

넷째, 연속적인 발달의 원리이다.
연속적인 발달의 원리란 인간의 생활 성장은 각 단계에 있어서 끊임없는 연속과 계속이지 단절이나 비약이 없다는 것이다. 유년다운 생활을 함으로써 소년이 괴고, 청년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이다. 프뢰벨은 아동의 생활은 어른들의 생활이 아닌 아동 그 자체를 둘러싼 생활임을 강조함으로써 교육의 미래생활에 대한 준비설을 부정하였다.

다섯째, 노작교육의 원리이다.
아동의 모든 단순한 생산활동을 노작으로 보고 생명 그 자체를 활동·노작·창조라고 보았다. 인간의 사명은 행동을 통하여 신성(神性)을 표현하는 것이며, 이 신성이 숨겨져 있는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내적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사명을 신성의 표현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노작의 원리는 인간 생명의 원리이며 생명의 발전을 위한 교육원리라는 것이다. 그 생명 발전의 과정이 노작이기 때문에 노작 교육이 곧 인간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페스탈로치의 노작교육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3. 교육사적 의의와 후세에 끼친 영향
첫째, 유치원의 창시자이다.
프뢰벨에 의하면 유치원은 아동시대의 '자유 공화국'으로 유치원의 목적은 성인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잘못 이해된 자유의 무법 학교로부터 진실한 학교를 수하는 것이다.

둘째, 유치원의 전신인 1839년 장난감 중심의 '유아교육 지도자 강습소'를 개설하여 유아 40명을 모아 '조그마한 어린이 작업소'를 만든 것이 유치원의 전신이 되었다.

셋째, 교수의 기본원칙으로서 사회화의 의의를 인정한 최초의 교육사상가이다.

넷째, 자기표현의 활동을 중시한 것으로 아동교육에 있어서 유희의 본질적 요소와 자기활동을 중시한 점이 교육에 공헌하였다.

그리하여 프뢰벨이 창설한 유치원이 미국 공립유치원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류교육가 M. Montessori의 '아동의 집' 창설에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