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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에밀리아 역사와 문화

레지오 에밀리아 유아교육의 역사와 문화

 

 

  레지오 에밀리아의 지방자치체는 1963년에 만 3세부터 만 6세의 어린이들을 위한 첫 유치원을 건립하면서 교육과의 연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에 3개월부터 만 3세에 이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첫 영유아 센터를 건립했다.

  1967년에서 1968년 사이에 관료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난 이후 지역 정부는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즉후에 일반인들의 염원에 의해 설립된 공동체 운영 기반의 학교들의 지방자치 운영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레지오 에밀리아 시당국의 유아교육 시스템은 계속해서 진보적인 사고와 연구, 실험적 시도들을 향한 밑바탕등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이것은 지속적인 교사교육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다른 주요한 특징으로는, 평등적 상호협력관계들에 기반한 조직체, 교육적 대화로서 존재하는 환경에 부여되는 가치, 아뜰리에의 존재,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어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과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참여, 그리고 지역공동체 외부의 상승작용적인 관계들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양상들은 태어나서부터 6세에 이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광대한 잠재력을 가진 권리의 주체로서의 어린이의 이미지에 기반한 포괄적인 교육적 프로젝트를 확증하고 유지시킨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모든 언어들(표출적이고, 상호의사소통적이며, 상징적이고, 인지적이고, 윤리적이고, 은유적이고, 논리적이고, 상상적이고, 관계에 의존한)의 발달을 통하여 어린이들의 교육을 진보시키고자 함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 경험을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걸쳐 많은 교사들과 교육가들, 연구자들, 행정가들의 토론과 심층적인 연구들을 유도하는 참조 지점으로 존재하도록 만들어 주는 힘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다채로운 만남들이 또다시 레지오 에밀리아의 교육 경험에 양분을 제공하고 있어, 계속적으로 대화와 아이디어들의 비교 대조와 다른 경험들과의 나눔에 의존하여 계속해서 발달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레지오 에밀리아의 시당국 유치원과 영유아 센터들은 특별한 이벤트와 만남들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다.

  1971년 3월에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유아들을 위한 새로운 학교를 위한 경험들"이라는 주제의 국내 학술대회가 열렸다. 그것이 이탈리아에서는 유아교육을 위한 것으로는 처음으로 열린 이벤트였다. 그 학술대회에는 900명 이상의 교사들이 자신의 비용을 내고 참가했고, 그 학술대회 과정중에서 논의된 것들이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이탈리아 전 지역에 걸쳐 유아교육의 발달을 위한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

  그 다음 해, 레지오의 지역 교사들과 어린이들과 함께 한 여러 번의 세미나에서, 시인이자 작가인 Gianni Rodari가 "환상 입문서"라는 자신의 작품의 사상을 시험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의 그 책은, 레지오의 참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레지오 에밀리아 시에 헌정되었다.

  1975년에 레지오의 경험은 "가정과 사회에서 권리의 근본주체로서의 어린이"라는 주제로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지원으로 볼로냐에서 열린 국내 학술대회에 광범위하게 기여했다. 첫걸음이 매우 중요했고, 광범위했다. 그리고 출판의 과정이 어린 시절의 새로운 문화를 향해가는 새 길을 개척하는데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문서들을 만들어냈다.

  1976년에 레지오 에밀리아의 시당국에 의해 운영되던 유아교육기관들은 전국 라디오 방송의 사회자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그는 이 기관들을 반종교적이며, 반성직자적이라고 고발했다. 이 고발은 가장 엽기적인 날조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그랬다. 한 해 동안 내내 유아교육기관들은 일반적으로 교육에 관한 것과 특히 종교교육에 관한 토론을 위한 열린 공개토론의 장이 되었다. 토론들은 부모들과 교사들, 행정가들뿐만 아니라 그리고 문화계, 정치계, 종교계의 대표자들을 개입시켰다. 그것은 진보적이며, 자유로운 민주적 행로였으며, 문화의 교류였다. 그것은 모든 참가자에 의해 승낙된, "종교교육과 어린이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써진 공식적 성명으로 결론지어졌다.

  1980년에 교사들과 교육전문가들과 연구가들, 대학교수들로 조직된 국립 유아교육 연구회가 유아교육과 유아기 전반에 관한 일반적인 주제들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토론을 목적으로 레지오 에밀리아에 제정되었다. 이 그룹이 라 스페찌아와 로마, 피스토이아, 오르비에토, 베니스, 안코나, 리치오네에서 7번의 전국 학술대회를 조직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외국 대표들도 참여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 시당국 유아교육 시스템은 막대한 양적 성장을 이룩했다. 21개의 유치원이 50%의 지역 어린이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13개의 영유아센터가 30%의 어린이들에게 교육혜택을 주었다. 이러한 양적성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들이 유아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특별히 영유아 센터의 경우가 더욱더 심했다.

  같은 기간에 새로운 재무상의 법규정은 지방자치정부에서 새로운 고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교육기관도 어떠한 확장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역 공동체의 유아교육기관에 대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1987년에 사회사업 단체와 함께 두 개의 새로운 영유아센터를 여는 일에 동의하게 되었고, 최근에 또 하나의 영유아센터가 더해졌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가정 연합의 영유아센터가 1991년에 시당국과 시의 유아교육 행정체제의 협력으로 문을 열었다.

  198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국가 정부로부터의 지방자치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것은 레지오 에밀리아 시 당국에 의해 운영되는 교육기관에 큰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이것의 존폐 여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힘을 얻고 있던 여론에 따라 레지오의 교육 체제가 이탈리아의 국가 정부 전체 시스템 아래 편입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토론을 거친 후, 지역민들의 반응은 다시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했다. 레지오 시의 유아교육을 향한 "소명"은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Progetto Infanzia(어린이를 위한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레지오 에밀리아 시당국은 어린이들을 위한 중대한 헌신을 보였다.

국가에 의한 두 개의 한 학급짜리 유치원들의 결합에 뒤이어 시 당국은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립과 사립 유치원들의 성장에 크게 공헌함을 통해 양질의 유아교육의 제공을 강화하는 책임을 맡았고, 그에 따라 혼합된 양상의 유아교육 시스템을 낳게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더욱 중요한 발걸음은 1994년에 FISM(이탈리아 카톨릭 유치원 연합)의 인정으로, 7억 리라 정도의 펀드를 1996년에 체결했다. 이 펀드의 목적은 교사교육과 전문적 발달, 유치원 환경, 매체, 도구들의 공급을 풍요롭게 하는 것, 또한 그 외의 지원 등을 포함하여 유아교육기관의 질적 수준을 높여 가는 과정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레지오를 향한 최초의 외국의 관심은 쿠바, 불가리아, 스페인, 일본, 스위스, 프랑스의 방문단에 의해 보여졌다. 스웨덴의 교육자들과 연구자들과의 깊이 있는 교유가 1979년에 시작되었고, 1981년에 "눈이 장벽을 넘는다면..."이라 이름 붙여진 전시가 스톡홀름의 Moderna Museet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 전시회는 레지오 에밀리아의 영유아 센터들과 유치원들의 교육에 대한 증거들로 구성되었다.

  스톡홀름의 전시는 스웨덴 TV의 다큐멘터리와 스톡홀름의 교육자들과 기고가와 작가들로부터의 공험으로 이루어진 책의 출판으로 연계되었다. 여기서부터 레지오의 전시는 성황리에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어린이의 수백 가지 언어"라 불리는 현재의 전시회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이 전시회는 15년째 어린이의 권리와 잠재력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이 전시의 결과로 국제적인 교류 또한 훨씬 강화되었다. 해가 갈수록 전 세계의 사람들이 레지오의 교육경험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91년에는 뉴스위크지에서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치원들을 세계에서 최고로 앞서가는 유아교육기관으로 선정함에 따라 더욱더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992년에는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 창시자이자 교육철학자, 교육자인 로리스 말라구찌가 그의 유아교육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덴마크의 레고상(LEGO)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시카고의 Kohl Foundation에 의해 비슷한 상이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치원들과 영유아센터에 수여되었다. 1994년에 안데르센상이 말라 구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레지오의 유아교육기관에 수여되었고, 같은 해 지중해 연안 국제 학교 연맹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국제적 관심은 다른 나라에도 "레지오 접근법"이라 불리게 된 이 레지오의 교육 경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유치원들의 설립을 향한 협력 체제들이 만들어지게 했다.

  레지오 접근법에 대한 증가하는 관심과 협력의 요구들을 인식했지만, 그것을 수용하는데 물리적, 조직적 한계가 있어, 레지오 시정부는 이러한 일들을 지원하는 공기업의 제정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Reggio Children(어린이들의 권리와 잠재력의 발달과 그의 보호를 위한 국제 센터로서)이 1994년에 설립되었다. 이것은 유한 책임 회사로 광대한 공적 자본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사적 영역의 참여(은행, 지역의 기업들, 사회 복지단체, 교사나 학부모 등의 개인까지)로 이루어졌다. 이 기업 운영의 주요 영역은 국제적인 교류와 세미나, 레지오 접근법에 관련한 교육 코스, 책과 시청각 자료의 출판 등을 조직하고 감독함을 통해 레지오의 영유아센터와 유치원에서 발달해온, 이론적 실제적 경험을 발전시키고, 보급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또한 레지오 접근법의 영향을 받고 어린이들의 잠재력 발달에 적절한 교육기관을 설립하려 하는 사람들의 자문이 되고, 조정 역할을 함으로 해서 유아센터나, 유치원, 어린이센터를 여는데 도움을 준다.

  1994년에 Reggio Children은 처음으로 Washington D. C.의 Model Early Learning Center에 인증을 했다. 이 인증은 어린이의 잠재력 인정, 물리적 환경의 질적 향상과 조직화, 함께 일하는 어린이들, 교사들, 학교 직원 전체를 위한 학습 책략과 가치로서의 평등 의식의 증진, 교육적 프로젝트에서의 가정의 참여 분위기의 형성 등을 기반으로 한 레지오 접근법을 적용한 학교들에 주는 것이었다. 이 레지오 접근법과 연장선상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다른 학교들과 교육 체계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실험 영유아 학교와 유치원, 알바니아의 티라나 유치원, 미국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미주리, 오하이오, 캘리포니아 등지의 많은 유치원들, 태국 방콕의 몇몇 사립학교 등이 있다.

  1995년에 EU는 Reggio Children이 브뤼셀의 EU 직원 자녀들을 위한 탁아 서비스를 위한 Clovis 유아 센터의 경영에 교육학적 컨설턴트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것은, 어린이들의 권리와 잠재력을 완전하게 존중하는 가운데 어린이의 교육을 지원하는 문화를 펼치는 희망으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

  1995년에 또한 장래 레지오 에밀리아의 교육적 경험을 위한 중요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제롬 브루너와, 이탈리아 교육부의 방문이 있었다. 현대 심리학 연구계의 권위자인 브루너 박사는 레지오 에밀리아의 영유아센터와 유치원들을 방문하고는 깊이 감명을 받고, 국제적으로 교육 체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큰 뜻을 품은 협력 관계를 체결했다.

  그와 동등하게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레지오의 유아교육 체제의 3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교육부와 관계를 맺었다. 교육부는 공적으로 레지오의 혁신적인 교육의 가치를 인정했고, 전국 교육의 연계를 통해 교사 교육을 발달시킬 수 있는 일반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